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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수사지 당간지주

운영자 | 2013.05.03 21:16 | 조회 5157





소수서원 입구의 소나무 숲을 지나 서원 쪽으로 가다보면 숙수사(宿水寺)지 당간지주가 길 오른쪽 숲 속에 서 있다. 숙수사는 세조3년(1457) ‘단종복위운동’ 실패로 순흥도호부가 풍기군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없어졌다.

당간은 절에서 불교의식이 있을 때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幢)’이라는 깃발의 깃대를 말하며 이 깃대를 고정시켜 받쳐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문화재조사를 기록한 「순흥지」에 의하면, 원래는 당간석의 받침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높이 3,910mm 폭 520mm 의 거대한 당간지주만이 남아 있으며, 당간지주의 규모와 조각의 수준으로 보아 당시 숙수사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당간지주는 양 지주가 59cm의 간격을 두고 동서로 상대해 있는데, 상부로 가면서 3cm 가량 더 넓어지고 있다. 지주의 안쪽 측면으로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바깥 면은 중앙에 능선형으로 길게 종대를 새기고 있다.
정상에서 117cm 아래서부터 234cm까지 사이는 전면적으로 음각되었다.

전후 양 측면에는 양 지주 모두 폭 7cm의 외록선 문이 돌려지고 그 중앙에도 선으로 능선이 조식되어 있다. 정상부의 안쪽 면으로 장방형의 간구가 있고, 하단은 다듬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한편 지대석은 1면에 원고의 받침이 새겨진 장대석이 양쪽으로 1매씩 놓여 있다.
당간지주의 형식이나 숙수사지의 여타 유물들과 관련해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간지주는 서원 경내에 변형된 용도로 남아있는 석조 불상대좌와 주춧돌 등과 함께 소수서원이 숙수사 옛터에 세워진 것임을 알게 한다.
서원 건립 시 비록 배척했던 종교인 불교에서 사용하던 물건이라도 성리학자들이 개의치 않고 필요에 따라 재활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수서원처럼 옛 절터를 서원으로 사용하게 된 배경은 배움의 도장으로서의 서원은 세속에서 멀리 벗어나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아울러 선현을 모시는 곳이라 산수가 뛰어나고 한적한 곳이 적합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이황은 “서원은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산천경개가 수려하고 한적한 곳에 있어 환경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래서 교육적 성과가 크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사찰에서 서원으로서의 기능 전이는 문화교체에 따른 공간점유의 계승이라는 측면도 있으나 새 질서의 수립이라는 정책적 측면의 의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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